양육과 생존
우리는 태어난 후 몇 달간을 어머니에 대해 알아 가며 보내고 이때 후각, 미각, 촉각, 시각 등 모든 감각이 동원된다. 그 기간 동안 어머니가 우리와 교감하면서 고통을 완화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의 존재는 곧 안전을 의미하게 된다. 성장기에 우리의 부모는 상호작용의 본능을 실행으로 옮기면서 우리 뇌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간 아기의 경우에는 달리는 속도, 나무를 타는 기술, 독버섯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사를 가르지는 않는다. 인간은 주변 사람들의 요구와 의도를 파악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한 인간에게 주변의 또 다른 인간들은 가장 중요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면 의식주를 해결하고 보호를 받으며 를 잇기가 용이해진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존하며 필요한 것을 얻게 되는데, 이 때문에 어린아이는 버림받게 되면 자신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성인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직장과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며, 수많은 정보를 관리하면서 스트레스에도 대처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입장을 견지하고, 어떤 싸움에 뛰어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며,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였을 때에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까? 어쩌면 과거에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 가지 요소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일지도 모른다. 바로 적절한 양육이다. 어린 시절에 받은 양육은 두뇌의 복잡한 체계가 발달하고 통합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 시기에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면 전전두피질이 최적의 상태 발달하게 되므로 스스로에 대해 더 정확하게 인식하고, 타인을 신뢰하며, 감정을 잘 조절하고, 인지적 지능과 감성적 지능을 활용하여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 한 가지 결론을 추가해야 한다. ‘최고의 양육을 받은 자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는다.’
부모가 자녀를 무시하고 방임하거나 정서적 조율을 소홀히 하는 것은 ‘넌 우리가 원했던 아이가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같다. 이는 의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기인한 부산물일 뿐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아이의 뇌는 장기적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달한다. 아이에게는 ‘사랑하지 않음’으로 받아들여지는 행동을 하는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알아내거나 발견하려 하지 말라. 무엇보다도 기회를 얻으려 하지 말라’고 말하는 셈이다. 트라우마를 겪거나 학대당하거나 무시당한 아이는 겅강과 장기적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고방식, 내적 상태, 정서, 면역 기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당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당신을 ‘약하게’ 만들 수는 있는 것이다.
자녀를 기르거나 타인을 돌보는 것은 자신의 생존에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양육과 같은 이타적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기적이고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충동을 억제해야 하지만 그러한 충동이 완전히 억제되는 경우는 드물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로 인해 심리치료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 보더라도 인간이 아직도 완전한 양육자로 진화하지는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내담자들은 배우자들에 대해 불평할 때가 많지만 자신과 꼭 맞는 상대와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배우자를 고를 때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에게 불가능한 것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즉, 자신이 원했지만 갖지 못했던 좋은 부모 역할을 배우자가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를 ‘모든 면에서 더 나았을’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원망하게 된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들어 주고 관심을 갖고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배우자에게 이 모든 일을 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배우자가 우리의 환상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는 없다.
-루이 코졸리노, 심리치료의 비밀: 뇌, 마음, 관계를 바꾸는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