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양육자의 생존

 

인간은 생후 한 달 동안 엄마의 냄새나 맛, 느낌, 모습을 익히는 데 주력한다. 갓난아기들은 엄마가 있을 때 안전함을 느끼고 자신에게 조율하고 고통을 진정시켜주는 엄마의 능력을 체험한다. 엄마와 아빠는 본능적으로 아기와 상호작용하면서 아기 뇌를 조성한다. 인간 아기의 생존은 빨리 달리고 나무에 기어오르고 식용 버섯인지 독버섯인지를 구분하는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인간 아기의 생존은 아기의 욕구와 의도를 알아차리는 양육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인간의 일차적인 환경은 타인이다. 인간은 관계에서 성공하면 먹을 것, 거주지, 보호, 자손이 보장된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관계 속에서 구한다.

저자는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을 생각할 때 근육질의 남자, 덩치 큰 수컷 고릴라, 먹잇감을 덮치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는 사자를 떠올린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적자’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명히 적자란 지위가 높은 원시인 같은 낭만적 개념은 아닐 것이다. 빨리 달리고 타인과 싸우고 음식을 낚아채는 본능은 스포츠 같은 취미에 남아 있다. 적자생존은 유기체가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환경에 달려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21세기의 처음 10년 동안 우리는 정보 과부하, 점점 높아지는 기대치, 교통체증에 적응하였다. 우리에게는 고속도로가 사바나이며 초고속인터넷이 갈라파고스이다. 자아가 확고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관계를 조절하고 비즈니스 회의에서 스트레스를 조절하며 앉아 있는 평균적인 시민이 현대 사회의 적자일까?

현대사회에는 다재다능, 직장과 가정의 균형, 정보 관리,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을 잘 유지하고 싸울 것과 피할 것을 선별하고 다양한 요구가 범람하는 와중에도 자신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러한 요구에 발맞춰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최선인가? 어떤 면에서 우리가 준비할 것은 고대 조상이 생존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과 동일한 초기 양육이다. 초기 양육이 뇌의 다양한 시스템 발달과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초기의 건강한 관계를 통하여 전전두피질이 최적화되면 인간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타인을 신뢰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긍정적으로 기대하며 매순간 만나는 문제에 IQ와 EQ를 사용할 것이다. 이제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 개념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는 가장 잘 길러진 자이다.

모성과 부성 본능-사실상 모든 양육 행동-은 인간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양육행위이다. 이러한 이타성은 이기심과 경쟁심과 공격적인 충동을 잘 억제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하여 자주 이런 것들을 억제하지 못한다. 심리치료의 대부분은 부모에게 들었던 부정적이고 모순된 메시지를 수정하는 일이다. 이는 양육자로서의 인간이 아직도 진화 중임을 의미한다.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하고 유기할 때 부모는 아이에게 ‘너는 적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아동의 뇌는 장기적인 생존을 지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형성된다. 어린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양육자의 행동은 자녀에게 ‘세상은 위험하다’ ‘세상을 탐색하지 마라’ ‘기회를 잡지 마라’라고 말한다. 어린 아동에게 상처를 주고 학대하고 방치할 때 선택받지 못한 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이들의 사고, 감정, 마음의 상태, 면역기능은 안녕과 장수와 자손 번식을 지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란 사람은 옛말처럼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하다” 라고 말 할 것이다.

-루이 코졸리노, 뇌기반 상담심리학의 이론과 실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