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활용해 뇌를 바꾸기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난해한 질문이지만 해답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자존감, 내면의 정서적 세계를 조절하는 능력,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 능력은 모두 생후 1~2년 내에 형성된다. 이 시기에는 부모나 그 밖의 양육자의 내면세계가 급속하게 암묵적(무의식적) 기억으로 ‘다운로드’된다. 이 시기에 학습한 것은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다운로드 된 후에 자의식이 형성된다. 따라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관한 일관성 있는 내러티브를 구성하려면 그것과 모순되는 감정, 반응, 행동을 정당화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창조한 내러티브를 믿게 된다. 그리고 내러티브가 자신에게 맞지 않을 경우에는 억지로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는 경향이 있다. 내러티브가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으면 오히려 본능적으로 그것에 더욱 집착하게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어떤 증상을 겪게 된다. 우리는 불안, 우울증, 대인관계 문제 같은 증상 때문에 심리치료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증상이 내면적 문제의 외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의식적 경험을 구성한다. 첫째, 우리는 현재를 경험한다. 둘째, 우리는 완전한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셋째, 우리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세 가지 환상이 조합되면 자신감을 갖고 주저 없이 무엇이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이제 그 세 가지 환상에 대해 살펴보자.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고 그것과 상호작용 할 때 활성화되는 복잡한 신경망 구조를 포함하는 뇌를 갖고 있다. 인간의 뇌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 - 타인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들의 동기가 무엇인지, 그들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에 관한 가정 - 을 정립하기 위해 타인의 행동과 몸짓을 분석하는 회로를 갖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한 직관은 그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고 집단적 협동과 개인의 자기방어를 촉진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은 감각, 운동, 정서를 관장하는 뇌 신경망들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다른 개채의 내면에 대해 추측하고 그것을 반영하여 우리의 행동과 감정을 생성한다.
마음 이론과 거울뉴런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가 한편으로는 타인의 정서, 생각, 의도를 읽는 능력의 진화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작용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귀인(attribution)과 정서는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자동적,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보자마자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 같은 과정에 관영하는 신경망 회로들은 우리를 타인의 동기와 의도를 추측하는데 능숙한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관찰을 통해 학습하고 마음속에서 새로운 행동을 실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이러한 능력에는 어두운 단명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진화 과정이 타인에 대한 인식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된 반면에 자기인식과 내적 통찰에 대한 투자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는 쉽게 알아차리면서 자신의 문제는 찾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사실, 자기인식에 도전하는 힘은 스스로에 대한 의심, 머뭇거림, 도덕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오히려 퇴화되어 왔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현실을 왜곡하는 무의식적 기제를 갖게 된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의 것임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고 그들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낄 것이라고 추정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ㅅ투사 과정을 일종의 방어 기제로 간주했는데, 사실 투사는 뇌가 사회적 정보의 처리에 적합하도록 진화해 온 과정의 부산물이다. 투사는 자동적으로 일어나고 불안을 완화해 주지만, 자기인식은 불안을 일으키며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가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을 탓함으로써 불안을 피하려 하는 자연적 반사작용이 우리의 내적 논리 체계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심리 치료는 왜 효과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인간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더욱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구할 수도 있다. 사람은 의식주 같은 생존의 기본 요건이 충족된 후에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얻고 싶어 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그 집단의 전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 형제자매, 그 밖의 가족까지 추가된다. 그리고 점차 친구나 사춘기의 이성 친구에게, 성인기에는 직장, 배우자, 자녀에 대해서도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지게 된다. 사회적 동물은 본능적으로 연결을 원하며, 사회적 집단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심리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내담자들은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지도 못한다.
수십 년 전에 조너스 소크(Jonas Salk) 박사는 진화가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음을 발견했다. 진화 과정에서 고안된 여러 가지 적응 전략들은 인간의 심리적 문제를 낳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치유의 도구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첫 번째 예는 안정적인 관계의 힘이다. 두 번째 예는 관계를 통해 신경가소성을 높이고 뇌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예는 자기인식과 신체적 감각, 이야기와 정서를 활용하여 신경망 회로를 재구성하고 더 효과적인 적응을 가능케 하는 몸과 마음의 힘이다. 우리는 인식의 오류를 알아차릴 수 있고, 내적 편향을 극복하여 외부 현실을 명확하게 지각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여 진화 과정에서 비롯된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 우리의 뇌와 마음은 타인과 교감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심리치료의 핵심이다.
-루이 코졸리노, 심리치료의 비밀: 뇌, 마음, 관계를 바꾸는 대화